☞ 사람은 각성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가지기도 한다.
☞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음의 순간에서 벗어나 대문호의 길을 가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28세가 되던 제정 러시아 말기 1849년 4월 페트라셰프스키 사건과 연류되어 체포된다. 그의 죄는 외무부 공무원인 페트라세프스키가 1845~1849년 주도한 반체제 성향의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모임은 페트라세프스키 문하에 젊은 사상가와 작가가 모여서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 F.M.C. 푸리에의 저작을 연구하고 러시아의 전제정치와 농노제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 해 12월 22일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간 그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기둥에 세워졌다. 사형 집행전에 5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28년 세월이 지나도록 매 순간을 아껴 쓰지 못한 것이 뼈아프게 후회되었다.
하지만 사형 바로 직전 황제의 특사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성탄 전야에 시베리아의 유영지로 향한다.
옴스크 이르티슈 강변에서 강제 노동 4년, 군복무 4년을 처벌 받게 되어 강제노동과 추위, 구박과 체벌을 경험한다.
그 와중에 그는 사색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감방에 있는 동안 죄수들 중에서 인간을 발견하게 됐다. 죽음의 집이 나를 민중에게 데려다 준 것이다.'
이 잔인했던 감옥생활은 그가 대문호로 성장하는데 값진 밑바탕이 된다. 그의 잔인했던 감옥생활은 후에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같이 감옥생활을 하던 약 1500명의 죄수들을 통해 적나라한 인간 본성에 눈을 뜬 것이다.
그는 감옥에서 지금까지 알아온 온갖 표준의 도덕, 관습적인 선악의 구분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양심과 죄, 신과 인간, 구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더욱 심오한 삶의 진신을 고뇌하며 탐색하였다.
감옥생활 뒤에도 오랜 군복무와 그늘진 결혼생활, 재혼, 노름과 빚더미 등의 굴곡진 삶 속에서 그의 줄기찬 사색은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의 작품으로 하나하나 열매을 맺게 된다.